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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체질이라 큰 병치레도 없었기도 했지만 웬지 병원에 가면 병을 얻어올 것 같은 생각에 병원에 가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매년 감기는 꼭 걸리고 넘어가 몸이 별로 안좋은가? 생각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고미숙 작가의 <동의보감>을 읽고 나니 앞으로 더 병원가 친해질 이유가 없겠다 싶다.
인간의 몸이 작은 우주라는 것.
내 몸을 제대로 알고 그 앎을 통해 스스로 삶의 비전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행해왔던 독서나 공부들은 얼마나 수박 겉핧기 수준이었는지
반성이 절로 됐다.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자기 수련의 수준으로 갈고 닦아 나의 삶의 비전을 찾아봐야겠다.
1장 - 허준, 거인의 무등을 탄 '자연철학자
-한의학에서의 몸은 가르고 절개한다고 해서 보이는 해부학적 신체가 아니다. 정·기·신의 접속과 변이, 경락의 배치 등을 파악하려면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몸이어야지 죽은 시체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의술이 높은 것과 방론을 저술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책을 쓴다는 건 언어, 곧 '로고스적' 작업이다. 언어는 인간의 행위 중에 가장 사회화된 소통체계다. 언어로 소통을 하기 위해선 분류학적 체계를 잡아야 하고 담론적 배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어휘력과 고도의 문장력이 필요한 건 말할 나위도 없다. 임상의 노하우와 과정을 그대로 옮긴다고 해서 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허준은 의사 이전에 학자였다. <동의보감>은 선조와 허준의 깊은 교감의 산물임을 느끼게 해준다. 선조는 참으로 복합적인 존재다. 사림 내부의 분화가 가속화되어 동과 서, 남과 북, 노와 소 등으로 갈리는 당쟁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허준으로 인해 <동의보감>이라는 비전이 열리기도 했지만, <동의보감>은 무엇보다 그 편찬자인 허준의 생을 구해주었다. 이럯이 바로 '자기구원'으로서의 공부다. 흔히 생각하듯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있었기에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허준과 <동의보감>이 바로 그런 관계였던 것.
-선조는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하면서 세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기존의 의서들이 너무 잡다하니 잘 간추리고 분류하여 일목요연한 체계를 잡으라. 둘째, 단순히 질병과 처방을 다루는 임상서가 아니라 섭생과 수양을 우선으로 하는 양생서를 쓰라는 것. 세번째,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니 종류별로 나누고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명칭을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 즉, 기존의 의학적 전통을 집대성하고 양생술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조선의 백성들이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
-<동의보감>은 생명과 우주, 삶과 질병, 존재와 자연 등을 두루 포괄하는 비전탐구서다.
-유불도, 삼교는 동양사상의 원천이다. 이 셋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 때론 불교의 이름으로 도교를 배척하고 때론 유학의 이름으로 불교를 처단하는 등, 물론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시기도 있었다. 주지하듯이 조선은 유학의 형이상학적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을 국교로 표방하였고, 그와 동시에 불교는 깊은 산중으로 물러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도교는 기본적으로 현실정치와 거리를 둔 탓으로 직접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상적 차원에선 항상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조선의 사상적 배치다.
-양생은 정기신을 닦는다는 의학적 '기술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것을 바탕으로 도의 경지를 추구하는 비전을 포함하고 있다. 도란 무엇인가? '도'는 나를 넘어서 천지와 교감하는 절대적 탈영토화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유교에선 수양, 도교에선 수련, 불교에선 수행이라고 한다. 셋은 아주 다른 길이지만 또 중첩되기도 한다. 특히 수련과 수행은 세속적 욕망을 비우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수련은 신선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수행은 연기법을 통해 무아를 터득하는 것이다. 요컨데 상통하는 듯하면서도 엇갈리는 길이 삼교다. 의술은 이 삼교가 공통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일종의 교집합에 해당한다. 무엇을 추구하든 '몸'이라는 지평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동의보감의 사상적 베이스가 삼교회토인건 지극히 당연하다.
-동의보감은 양샹을 전면에 내새웠지만, 신선술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보통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일상의 현장을 중심으로 한다. 일상을 떠나지 않으면서 양생을 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다. 마음을 닦는 길로는 불교만한 것이 없다. 양생과 수행, 치유와 마음이 상호연관성, <동의보감>과 불교가 만나는 지점이 여기가 아닐까.
-음양오행론과 사주명리학을 통달하고 난 다음 유교적 도학정치의 후견이 되었다가 그 다음에 다시 불교의 길로 들어사는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금원서대가란 금나라, 원나라 시절에 이름을 날린 네명의 명의들을 가르킨다. 위의 이정구의 글에 등장하는 유완서, 이고, 장종정, 주진형이 그들이다. 금원사대가 중에 이동원은 북의로, 주단계는 남의로 일컫는다. 허준은 "의가에서 남북의 명칭이 있어 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에 치우쳐 있으나 의약의 도는 면면히 이어졌으니 우리나라의 의학도 '동의'라고 살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보감은 거울에 비친 듯 명료하다는 의미다. 문장의 주어가 의사가 아니라 환자라는 사실이다. 즉, 아픈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동의보감>은 최고의 지성을 집대성해 놓았지만, 결코 전문가나 고급 인텔리들만을 위한 저서가 아니었다. 허준은 약의 양과 수를 대폭 조절하여 처방은 간결하고 약효는 최대로 끌어올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동의'라는 명칭이 이 책이 놓인 시공간적 좌표를 말해 준다면, '보감'은 이 책이 지향하는 용법과 계층의 보편성을 말해준다.
2장-의학, 글쓰기를 만나다. 이야기와 리듬
-한의학을 배우려면 운문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것도 우리시대 지식의 배치와는 사뭇 다른 점이다. 우리 시대 지식은 암기 아니면 이해, 둘 중 하나다. 둘 다 신체성이 아주 희박하다. 즉, 지식과 몸이 결합하는 밀도가 약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식을 터득하는 기쁨도, 앎의 열정도 동시에 냉각되는 것이다. 지식과 신체성을 연결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낭송이다. 한의학을 배운다는 것은 낭송의 달인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치유 역시 그 원인들의 제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과 일상, 그리고 외부의 기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비로서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질병은 시대의 투영이다. 우울증은 어디까지나 근대적 질병이다. 20세기 후 서구문명의 유입과 함께 인간이 자연과 단절되고, 다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외가 극심해지면서 만연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우울증이란 몸적 사건이다. 몸의 기운이 외부와 소통할 통로를 찾지 못하면, 기운이 아래로 처지면서 울결되어 버린다. 그러면 몸이 무겁게 가라앉으면서 삶의 의욕이 통째로 증발하고 만다. '우울'이란 단어 자체가 그런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병은 무엇보다 몸의 기운적 배치를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외부가 맺는 관계, 곧 존재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저 '함께 먹고 같이 잤을' 뿐이다. 안팎으로 꽉 막힌 신체를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스스로 창구가 되어 주었을 따름이다. 모든 질병은 일상의 흐름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병을 치유하려면 궁극적으로 일상을 재배치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두려움의 원천은 자기 자신이다. 약간만 마음에 틈이 생기면 순식간에 이기심과 사악함이 침투하여 온갖 망상을 짓고 그 망상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물어뜯어 버리기 때문이다. 고로 경계하고 경계해야 마땅하다.
3장 - 정, 기, 신: 내 안의 자연 혹은 '아바타'
-손진인이 이르기를, 머리가 둥근 건 하늘을 본다는 것이고 발이 넓적한 건 땅을 본따서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듯이 팔다리가 있고, 오행과 육극이 있듯이 오장육부가 있다. 팔풍이 있으니 여덟개의 마디가 있고, 구성의 있으므로 몸에도 아홉 개의 구멍이 있다. 12시와 십이경맥, 24절기와 스물 네 개의 수혈, 황도 365와 365개의 골절 등등. 이런 식으로 천지와 신체 사이를 잇는 화려한 대칭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해와 달이 빛나듯 두 눈이 빛나고 밤과 낮이 있기에 잠들고 깬다. 이 말은 지구가 움직이는 한 밤낮이 있고 밤낮이 있는 한 인간은 반드시 잠들고 깨는 리듬을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레와 번개는 기쁨과 노함으로, 비와 이슬은 눈물과 콧물로, 샘물은 혈액으로, 풀과 나무는 모발로, 금석은 치아로... 요컨대 내 몸의 모든 형상은 다 천지만물에 있다. 거꾸로 천지만물의 형상과 리듬은 고스란히 내 몸 안에 들어 있다.
-'친환경' 혹은 '생태주의'조차도 많은 경우 인간적 이미지를 자연에 그대로 투사하여 '아름답게' 소유하고자 할 뿐이다.
-4라는 숫자의 공통성. 오행과 오장(간, 심, 비, 폐, 신) 그리고 다섯 손가락. 여기서는 5가는 수가 작용한다. 숫자는 단지 양적 증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가 있다. 예컨대 5에서 1을 더하면 6이 되는 것이 아니라, 5와 6은 전혀 다른 질과 원리를 표현한다. 역학을 상수학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다.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다." by 손진인
-사대는 지, 수, 화, 풍이고 오상은 유교에서 말하는 인, 의, 지, 예, 신을 가르킨다. 이것들이 어떤 특별한 인연조건을 만나면 사람이라는 형을 이룬다. 끊임없는 변이를 통해 인간은 생명의 바다를 영원히 유영할 수 있다. 고로 몸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는 하나다.
-동양우주론에서도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수는 양에서 생겨 음으로 완성된다. 기가 움직이면 양이 생기고 기가 모여 고요히 있으면 물이 되니 이것은 입김을 불어 보면 알 수 있다. 신은 기의 주인이므로 신이 움직이면 기가 따라 가고, 기는 수의 어미이므로 기가 모이면 물이 생긴다.(내경편, 진액 중) 태역-태초-태시-태소라는 동양우주론은 그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언술이 아니라, 힘에서 기로, 기에서 형으로, 형에서 질로 이어지는 단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쾌한 언술이다. 동양우주론과 현대물리학에는 창조의 과정만 있을 뿐 창조의 주체는 없다.
-정기신은 셋이면서 하나의 관계를 갖게 된다. 정은 생명의 물질적 토대, 신은 물질을 움직이는 무형의 벡터. 이 둘이 결합한 것이 정신인 셈이다. 동양사상에선 몸과 마음을 애초부터 분리하지 않고 통째로 다룬다.
-정이란 무엇인가? "두 사람의 신이 서로 부딪쳐 하나가 되어 형을 만든다. 항상 몸이 생기기 전에 먼저 생겨나는 것을 정이라고 한다.(내경편 정 중) 신-형-정, 그 다음에 몸이 생긴다고? 이 정이 저장되는 장기가 바로 신장이다. 고로 신장이 좋지 않다는 건 이 정의 저장이 부실하다는 뜻이 된다. 신장이 정을 충분히 저장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허리통증이다. 신장과 척수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허벅지가 튼실해야 신장이 충실하다,
-기란 무엇인가? 기는 신의 할아버지고, 정은 기의 자식, 기는 정과 신의 토대(내경편, 기 중) 정과는 달리 어딘가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왕성하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기는 주로 몸 안팎을 돌아다니면서 항상성을 유지시켜 주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그래서 호흡과 관련이 깊다. 주관하는 장부는 페가 된다. 그래서 폐기는 패기다! 패기가 없으면 폐기가 약하다. 그래서 비염이나 아토피 같은 면역계 질환들이 많은 듯 하다. 둘다 폐의 기운과 관련된 질병이기 때문이다.
-신이란 무엇인가? 신은 '고도의 정신활동, 변화를 주관하는 무형의 작용'에 해당한다. 심장이 중심이다. 마음은 심장에 있다. 우리는 뇌가 마음을 온통 주관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마음을 분석하기 위해 뇌만 뚤어지게 쳐다본다. 뇌과학은 신경다발들을 세밀하게 분석하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마음이라는 작용을 만들어 내는지는 알지 못한다. 즉 그것을 통해 '신'에 대해 파악하기란 어렵다.
-정은 생명의 기초를 이루는 물질적 토대를 의미한다. 기는 이 질료를 움직이는 에너지다. 신은 정기의 흐름에 벡터를 부여하는 컨트롤러 역할을 한다. 이 셋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변전을 거듭한다. "정은 신을 낳고, 신은 정을 기른다. 서로가 서로를 낳는 이 기묘한 관계. 그런데 이 둘의 관계를 적절하게 연결해 주는 매개체, 그것이 바로 기다. 정과 신을 생성한 기가 다시 정과 신을 매게한다. 이로써 기는 정과 신의 모태이면서 동시에 정과 신을 매개하는 실제적인 에너지로 작동한다."(도담 강의안)
● 정-진액-골수-신장-생식
● 기-호흡-폐-패기
● 신-변화-무형-심장-마음
-몸은 곧 소우주다. 우주에 지수화풍이 있듯이 내 몸 또한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화와 목금이 결합해서 형체가 되고 형체가 흩어지면 다시 수화와 목금으로 나눠진다. 이것들을 물질로만 생각하지 말라. 지수화풍, 수화목금, 모든 요소들이 보이지 않는 정신의 흐름이 내재되어 있다.
-자연을 산과 들, 강과 바다 같은 생태적 환경으로만 한정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 Nature를 번역하면서부터다. '네이처'를 자연이라고 번역하면서 자연이라는 낱말이 환경이라는 의미로 국한된다. 그 저변에 인간 주체/자연 객체라는 대쌍이 설정된 탓이다.
-에콜로지란 특별한 시공간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청정하게(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자신의 몸이 곧 자연임을 깨닫는 것이다. 동양사상은 우주와 생명을 어떤 실체들의 종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자 운동으로 본다. 우주는 다른 말로 바꾸면 시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은 둘이 아니다. 시간은 공간의 다름 펼침이다. 그리고 그 시공간이 변화해 가는 리듬을 자연이라고 한다. 삶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동사는 운동성이 존재를 규정한다. 그 때 운동은 이동, 중첩, 변이가 핵심이다. 정기신, 음양오행 이 개념들 역시 명사가 아니라 동명사에 가깝다.
-빅뱅이후, 우주는 단 찰나도 동일한 순간이었던 적이 없다. 다만 그 찰나들에 연속성을 부여해 주는 리듬이 있을 뿐이다. 차이 속의 되돌아옴, 그것이 순환이다. 그리고 순환의 우주적 리듬이 곧 역이다. '쉽다'와 끊임없이 '바뀐다'는 뜻을 동시에 가진 의역을 배운다는건, 이 자연의 쉽고도 변화무쌍한 용법을 익히는 것이다. 인생 또한 하나의 계절이다. 인생도 계절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의 리듬을 밟아가야 한다.
-아-채-병. <동의보감>이 말하는 질병의 진행과정이다. '아'는 기, 형, 질이 모두 갖춰지는 순간 발생하는 원초적 불균형을 뜻한다. '채'는 아의 후천적 진행과정으로 쉽게 말하면 피로한 상태다. 요즘 말로 하면 스트레스와 과로 상태에 가깝다. 이 피로함이 누적되거나 심화되면 '병'이 된다. '아'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씨앗단계, '채'는 그 씨앗들이 발아해서 점차 누적되어 가는 단계, '병'은 그것이 구체적인 증상과 함께 자신을 드러낸 단계.
-일찍이 르네 듀보가 말했듯이, 건강은 근대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환상이다. "그에 따르면, 건강은 생명체와 환경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인 적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균형일 뿐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 (강신익, 건강은 없다 중에서 )
4장 - '통하였느냐?': 양생술과 쾌락의 활용
-<동의보감>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수명은 120세다.(내경편, 신형 중)
-위생을 목표로 삼는 의학과 양생을 비전으로 삼는 의학은 아주 다른 체계다. 양생의 관점에 서게 되면 병에 대한 규정 자체가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철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배려와 자기수련 혹 자기치유, 이것이 그리스시대 양생술의 핵심이었다.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있는 이 자연의 동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양생의 출발점이다.
-형과 기가 서로 맞으면 장수하고 서로 맞지 않으면 요절한다. 피부와 살이 서로 잘 맞물리면 장수하고 잘 맞물리지 않으면 요절한다. 혈기와 경락이 형을 감당하면 장수하고 감당하지 못하면 요절한다. 곡기가 원기를 이기면 살이 찌며 장수하지 못하고, 원기가 곡기를 이기면 몸이 마르며 장수한다.
-양생술의 첫 번째 태제는 '정을 보호해야 한다.' 정은 생명의 물질적 기초라는 광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핵심은 신장에 저장되어 있는 정액(성호르몬)이다.
-병을 불러오고 덕을 해치는 것, 이것이 식탐의 재앙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술에 취하고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한껏 불린 다음 성생활을 하는 것. 손진인에 따르면 이렇게 하면 오장이 모두 뒤집어진다. 술도 화기요, 기름도 화기요, 성도 화기니 몸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격이다.
-한가롭게 노는 사람은 몸을 움직여 기력을 쓰는 때가 많지 않고 배불리 먹고 앉아 있거나 눕는다. 이렇게 하면 경락이 통하지 않고 혈맥이 막혀 노권상이 생긴다. 그래서 귀한 사람은 겉모습이 즐거워 보여도 마음은 힘이 들고, 천한 사람은 마음이 한가해도 겉모습은 힘들어 보인다. 귀한 사람은 아무 때나 욕심을 채우고 금기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며 진수성찬을 먹은 뒤 곧바로 드러눕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힘을 써야 하되, 너무 피로할 때까지 일을 해서는 안된다. 영위가 잘 흐르고 혈맥이 고르게 퍼지게 일하는 정도가 좋은 것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지도리는 좀을 먹지 않는 것과 같다.(내경편, 기)
-숨을 내쉬어 기를 내보내는 것은 양이 열리는 것이고, 숨을 들여마셔 기를 들여보내는 것은 음이 닫히는 것이다. 수명은 결국 호흡의 수에 달려있다. 화를 내는 것이 가장 기의 손실이 크다. 화는 간에서 주간하는 것으로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힘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보다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를 때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법. 그래서 화가날 때 심호흡을 크게 하는 것이 좋다. 호흡을 크게 하면 기가 안에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현대는 기본적으로 자기를 내세우는 시대다. 그래서 오행상으로 보면 목과 화 기운을 가장 많이 쓴다. 일상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기를 조절하는 주체가 되는 것, 그런 점에서 양생이란 철두철미 자기배려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의 자기조절능력을 기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척도가 자연의 변화, 곧 주야와 계절이다. 먼저 밤낮의 운행원리를 보면, "양기는 낮에는 몸의 외부를 주관한다. 새벽에 양기가 생겨나 정오에 융성해지고 해질 무렵에는 허해져 기문이 닫힌다. 자역에는 양기가 수렵되어야 내부에서 사기를 막을 수 있으니 근골을 움직이지 말고 안개나 이슬을 맞지 말아야 한다. 새벽, 정오, 해질 무렵의 시간에 거슬러 살면 몸이 힘들어진다.(내경편, 기 중)
-기의 조절은 우선 하루의 일상을 태양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루는 곧 일생의 축소판이다. 즉 인간은 매일 아침 태어나고 매일 밤 죽는다. 탄생과 소멸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과정을 성찰하고 훈련하는 최고의 현장이다.
-섭생을 잘 하려는 사람은 하루와 한 달의 금기를 어기지 말고 일 년 사계절에 맞춰 살아야만 한다.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이고, 한 달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고, 일 년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이고, 평생의 금기는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내경편, 신형 중)
-'신' 마음을 비워라.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 거처하는가? 정기신 모두가 마음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신이 거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신을 주관하는 건 심장이다. 심장은 신명을 간직하는데, 이 신명은 다시 일곱가지로 나뉜다. 신, 혼, 백, 정, 지, 의, 지. 이른바 칠신이다. 일단 심장은 신을, 간은 혼을, 폐는 백을, 비는 의와 지를, 신장은 지와 정을 간직한다.
-혼백은 영혼이나 무의식 개념에 가깝다면 의(생각)와 지(지혜)그리고 지(뜻)는 의식작용에 해당한다. 이런 활동이 다 이루어지고 나면 그것이 다시 정이라는 물질적 상태로 변형된다. 요컨대, 마음의 작용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그 결과가 신장에 저장되는데 이것이 소위 '내공'인 셈이다.
-사람이 마음을 비우면 도와 하나가 되고 마음을 두면 도와 어긋난다. 비우고 또 비우라는 것이다. 도란 다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몸과 세계', '몸과 사물'이 일치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신과 기가 모여 형이 단단해진다. 그럼 대체 뭘 비워야 하는가? 비움의 대상도 아주 구체적이다. "양성에는 다섯가지 어려움이 있다. 명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첫 째 어려움이고, 희로(기쁨과 노함)를 없애지 못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며, 소리와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셋째 어려움이고, 기름진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것이 넷째 어려움이며, 신이 허하고 정이 흩어지는 것이 다섯째 어려움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가슴속에 없으면 믿고 따르는 마음이 날로 두터워지고 도와 덕이 날로 온전해져서 선을 구하지 않아도 복이 오고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아도 절로 장소하게 된다. 이것이 양생의 요지다.(혜강) 즉 명리와 희로, 소리와 색, 기름진 음식, 신이 허하고 정이 흩어지는 것. 이 다섯가지를 비워야한다. 양생의 테크닉은 평범하다. 가장 좋은 음식은 '밥물이 걸죽하게 고인' 것, 가장 훌륭한 삶은 담백하고 진솔한 일상, 수련법은 이빨을 부딪히는 고치법, 맨손체조, 식후 100보 걷기,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일상적이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다.
-사람이 기분이 맑고 상쾌할 때는 선한 마음이 나고 기혈이 어지러워 기분이 탁할 때에는 불선한 마음이 난다. 선한 마음이 나는 때는 마음이 경청하여 열린 때이고, 악한 마음이 날 때는 심정이 중탁하여 막힌 때이다. 또 선한 마음이 날 때는 사아의 염에 대한 집착이 없느 때요, 악한 마음이 날 때는 사념이 가득한 때이네.(한규성, 역학원리강화 중에서)
-양생을 잘하는 자는 배가 고파야 먹고, 갈증이 나야 마신다. 자주 조금씩 먹으며 한꺼번에 많이 먹지를 않는데, 많이 먹으면 소화하기 어렵다. 항상 배부른 가운데 배고픈 듯하게 한다.
● 조식 - 소박하게 먹자
● 소식 : 적제 먹자
● 절식 : 절도있게 먹자
● 합식 : 함께 먹자
● 안식 : 편안하게 먹자
-소식해서 남은 음식을 남에게 베풀면 팔자에 없던 복이 생기고, 그 복이 자손까지 미친다.
5장 - 몸, 타자들의 공동체: 꿈에서 똥까지
-정화스님에 따르면, 종교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다 큰 가르침이란 두가지를 축으로 삼는다. 하나는 낯선 삶과의 마주침, 또 다른 하나는 존재에 대한 위대한 긍정.
-진액과 담음 역시 혈의 또 다른 변주에 해당한다. 이 진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서 뭉치고 막히면 그것을 일러 담음이라 한다. 담은 끈적하고 탁한 것, 음은 맑고 투명한 것. '열가지 병 중에 아홉은 담'이라는 '십병구담'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을 정도로 담음은 만병의 근원이다. 결국, 혈, 진액, 담음은 서로 하나의 계열이라 할 수 있다.
-간기가 성하면 성내는 꿈을 꾸고, 폐기가 성하면 울부짖는 꿈을 꾸며, 심기가 성하면 잘 웃고 두려워하는 꿈을 꾸며, 비기가 성하면 노래부르고 몸이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꿈을 꾸고, 신기가 성하면 요추가 둘러 끊어져 이어지지 않는 꿈을 꾼다.(내경편, 몽 중)
-건강한 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을 자주 꾼다는 것 자체가 잠을 푹 자지 못한다는 뜻이다. 꿈을 꾼다는 건 자면서도 쉬지 못하고 계속 깨어 있을 때처럼 의식이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몸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건강하고 청정한 삶을 위해서 꿈은 사라져야 한다.
-희망이란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그것으로 인해 현재가 망각될 때 희망은 비전이 아니라 망상이 된다. 그럴 경우, 점차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결과적으로 그 희망 때문에 삶이 추락하는 경우가 더 많다. 희망에 대한 집착이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면 그 꿈은 마땅히 버려야 한다. 지나간 것에 매달려서도 안되지만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끄달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대체 이토록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 꿈을 꾸지 않는 잠이 가장 건강하다는 건 그런 점에서도 참으로 소중한 의학적 지혜다.
-그럼 어떻게 해야 꿈이 없이 푹 잘 수 있을까? <동의보감>에서는 그 방법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잘 때 모로 누워 무릎을 굽히고 자면 심기를 도울 수 있다. 일아날 때 기지개를 켜면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다. 반듯하게 누워자면 마귀와 귀신을 부르게 된다. 고앚가 시체처럼 반듯하게 누워 자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낮잠을 자면 안되는 것은 기가 빠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때는 하룻밤에 늘 5번씩 돌아누어야 한다. 손을 가슴 위에 앉으면 가위에 눌릴 수 있다." 잠을 푹 자려면 머리가 차가워야 한다. 머리에 있는 피가 간으로 다 수렴되기 때문이다. 간이 피를 불러모으는(간장혈) 작용이 시원치 않으면 밤이 되어도 머리에 여전히 피가 돌아다니고 그러면 혼백도 의식도 정처 없이 떠돌게 마련이다. 잠이 오지 않으면 온도를 낮춰야 한다. 밤에 편안하게 자지 못하는 것은 이불이 두터워 열이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빨리 이불을 치우고 땀구멍을 닦아야 한다. 배는 따뜻하게, 머리느 차갑게!
-우리 시대의 문화는 비주얼과 스펙터클이 대세다. 오감중에서 오직 시각만이 특권화된 시대다. 소리와 청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망각해 버렸다. <동의보감>에서 성음(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심은 성음의 주인이고, 폐는 성음의 문이며, 신은 성음의 뿌리이다." 심과 폐, 신장이 모두 소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소리야말로 내 몸의 상태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표지다. 소리가 매끄럽게 잘 나오려면 심장과 페, 신장이 두루 화평해야 한다. 특히 신장에 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위로 올라오질 못한다.
-음성은 뼈고 뼈는 마음이다. 뼈를 담당하는 장기 역시 신장이다. 소리-뼈-신장이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 뭔가를 끈기있게 하는 힘도 신장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일의 흐름과 성패를 단번에 꿰뚫을 수 있다. 노래를 주관하는 장부는 비장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얼굴이 붉고 입이 마르며 잘 웃는다. 심에 화가 쌓인 탓이다.
-언어는 성음의 결정체다.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소통의 매개만이 아니다. 언어를 통해 표상을 만들고 세계를 구성한다. 로고스(지성)가 곧 로퀜스(언어)인 것. 즉,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삶의 크기이자 운명의 지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원초적으로 호모 로퀜스다. <동의보감>에서도 "스스로 말하는 것을 언이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답하는 것을 어라고 한다"라며 언어의 상호관계성을 분명히 했다. 분명하게 말하고 똑바로 대답하는 것이 언어인 것이다. 그래서 말을 잘한다는 것은 심신의 소통이 원활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꾸로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건 언어적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 심신의 교통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15분이상 반복하면 치매를 의심행봐야 한다. 치매란 단기기억의 상실로 앞에 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반복만큼 무서운 증상도 없다.
-소리와 말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건 생리적 기전은 물론이고, 사회적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실로 치명적이다. 소리를 잘다스리기 위한 생활규칙 몇가지가 있다. 첫째, 해가 진 뒤에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말을 한다는 건 하초의 기운을 위로 끌어올리는 행위다. 해가 진 뒤에는 머리와 상초에 있던 양기가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머리에 있던 피가 간으로 저장되면서(간장혈) 잠이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큰 소리로 말을 하게 되면 '간장혈'이 어려워진다. 당연히 잠이 들 수가 없다. 둘째, 식사할 때는 말하지 말 것. 밥을 먹을 때 밥에 집중하는게 좋다는 뜻이다. 셋째, 누운 채로 크게 말을 하면 안된다. 누운 채로 말을 하면 안되는 이유는, 오장은 종과 경쇠와 같아서 매달아 놓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밤에 누운채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점차 호흡이 거칠어질 뿐더라 몹시 피곤해진다. 평소 말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의 기운을 썼기 때문이다. 넷째, 길을 걸을 때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소리와 말은 내 안의 타자다. 자신의 소리와 교감하는 최고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고전을 낭송하는 것이다. 고전에 담긴 문장은 율려 자체가 신체적 감응력을 높여준다. 묵독을 통해서는 형해화된 뜻을 취하고 말지만 소리 내어 읊게 되면 그 지혜가 율려를 타고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 오게 된다. 만약 좋은 벗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쿵푸'는 없으리라. 인간은 언어로 사유하고 언어로 삶을 창조하고 언어로 세상을 만든다는 것, 마침내 언어의 길을 끊고 언어 저편의 '도'를 깨우치기 위해서도 반드시 언어라는 매개항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 고로 인간은 호모 로퀜스다!
-충은 특히 단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충에 의한 병이 들었을 땐 감초를 금해야 한다. 신맛을 보면 흠칫 멈추고 쓴맛을 보면 안정되고 매운맛을 보면 고개를 숙인다."현대인들은 단맛에 거의 중독되어 있다. 패스트푸드라는 것이 모든 재료를 가공하는 것인데, 그 가공의 핵심은 달고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재료의 원맛을 단맛으로 범벅을 해놓은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맛을 보면 계속 끌리게 되어 마침내 중독되어 버린다. 이런 음식을 계속 먹는한 중독증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아프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일차적으로 식욕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픈데 식욕이 왕성한 경우는 거의 없다. 식욕이 없다는 건 달리 말하면 배설이 제대로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은 음식과 호흡, 칠정으로 삶을 영위한다. 비장에서 폐로, 폐에서 다시 방광으로, 이 과정이 원할하지 않으면 모두 병증이다. "소변이 뿌연 것은 모두 열에 속한다. 소변이 누런 것은 아랫배에 열이 있기 때문이다. 간열로 병이 있으면 소변이 먼저 누렇게 된다."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열이 쌓이고 그것으로 인해 방광이 졸아들어서 소변을 못만든다. 폐가 허해지면 방광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건강의 지표는 가장 먼저 소화가 잘되는가? 이다. 그리고 똥오줌이 잘나오고 있는가? 다시 말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타자들을 잘 수용할 능력이 있는가? 이미 익숙해진 것들과의 작별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는가? 핵심은 거기에 있다.
6장 - 오장육부, 그 마법의 사중주
-오장육부를 활발하게 돌리면서 상생상극의 운동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 정기신의 소임이기도 하다. 정기신이 자연의 아바타라면 오장육부는 정기신의 아바타인 셈이다. 얼굴은 오장육부의 아바타다. 눈은 간이요, 귀는 신장이며, 코는 폐고, 혀는 심장이다.
-정기신은 생명의 원천이지만 끊임없이 변전한다. 핵심은 유동성이다.
-오장은 간, 심, 비, 폐, 신. 육부는 담, 소장, 위, 대장, 방광, 그리고 구체적인 장기가 아닌 기운의 분포도를 말하는 삼초부를 말한다. 삼초는 몸통을 상초, 중초, 하초로 나눈 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삼초부를 빼면 오장오부가 되고, 이들은 바로 음양의 관계로 묶인다. 오장이 음, 육부가 양이다. 오장은 내부를 구성하는 장기고, 육부는 외부적이다. "오장은 정기를 저장하나 내보내지 않는다. 육부는 오곡을 소화시키거나 저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제로 채워지지는 하나 가득차 있지는 않다."(내경편, 오장육부 중)
-간/담, 심/소장, 비/위, 폐/대장, 신/방광. 운명의 커플들이다. 심/소장이 화기운, 폐/대장이 금기운을 공유한다.
-목화토금수. 이 순서는 상생의 흐름이다. 목생화. 목은 화를 낳는다. 불을 만들려면 나무를 태우는게 가장 빠르다. 화생토. 화는 토를 낳는다. 불이 꺼지면 재가 남고 그 재가 흙이 된다. 토생금. 토는 금을 낳는다. 흙이 굳어지면 단단한 돌이나 쇠가 되는 이치다. 금생수. 금은 수를 낳는다. 용광로에서 쇠를 녹여 물을 만드는 것이나 깊은 산속 옹달샘 옆엔 늘 멋드러진 기암괴석이 있음을 염두에 두면 된다. 이 다섯가지 스텝은 천지만물의 운행을 주관한다.
-오장은 일반적으로 간심비폐신으로 호명된다. 이 순서가 바로 목화토금수의 리듬이다. 즉 간(담)은 목, 심(소장)은 화,비(위)는 토, 폐(대장)는 금, 신(방광)은 수가 된다.
-목은 봄이다. 봄은 바람과 함께 온다. '봄-바람'은 하나의 의미를 이룬다. 방향은 동쪽이다.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다. 봄바람은 동쪽에서 불어오고 그래서 따뜻하다. 이 바람이 신맛을 낳고 신맛이 간을 낳는다. '봄-바람-동쪽-신맛-간(담). 이렇게 하나의 계열이 탄생했다.
-여름은 불이다. 불은 남쪽의 열기를 불러온다. 남쪽은 태양이 가장 뜨거운 곳이다. 그 치열함이 쓴맛을 낳고 쓴맛이 심장을 낳는다. 심장은 군주지관으로 모든 장기의 으뜸이다. '여름-화-남쪽-쓴맛-심(소장)'이 또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가을, 우주의 대혁명이 일어나는 시절이다. 삽시간에 식어버리고 대지에 찬서리가 내린다. 가을에도 바람이 분다. 봄바람은 변덕스럽고 요란하다. 하지만 가을바람은 땅을 휩~ 힙쓸고 지나간다. 잎새를 떨구고 마침내 소멸케 하는 기운이다. 이 대변현혁을 감당하기 위해 매니저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흡수하는 대지의 역능이 발휘되는 시점, 그것이 곧 늦여름 혹은 환절기다. 이것은 달콤하다. 단맛이 낳는 장기가 비장이다. 비장은 대지의 전령사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소화시켜 필요한 곳에 공급해준다. 그래서 몸통의 중앙에 있다. 내조의 여왕이자 헌신적인 매니저다. '토-중앙-단맛-비위'로 이어지는 이 매니저 덕분에 금화교역이 무사히 이뤄진다.
-가을은 심판의 계절이다. 열매만 남기고 모든 것은 사라져야 한다. 서방정토라는 말이 환기하듯 서쪽은 죽음과 소멸의 방향이다. 서방의 살기가 매운맛을 낳고 매운맛은 폐를 낳는다. '가을-금-서쪽-매운맛-폐(대장).
-겨울은 열매조차 사그러든다.안으로 안으로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때까지 응축하고 응축한다. 그 결정체가 생명의 근원인 물이다. 모든 생명체는 물에서 시작되었다. 물은 근원이자 모태고 최소단위다. 바닷물이 그렇듯이, 물은 짜다. 이 짠맛이 신장을 낳는다. 적막과 고용의 시절, '겨울-수-북쪽-짠만-신(방광)'. 이것이 이 파노라마의 종결자다.
● 간(담), 바람(풍)이 전해 주는 봄의 교향곡
● 심(소장), 천지만물이 화려한 불꽃(화)놀이
● 비(위), 대지(토)의 전령사 혹은 매니저
● 폐(대장), 금화교역-우주의 대혁명
● 신(방광), 적막과 열정의 '겨울소나타'
-한 달은 두 개의 절기로 이루어져있고, 그래서 모두 24절기다. 결국 한 절기는 보름씩이고, 이 보름은 다시 5일씩 나누어진다. 간이 활동을 시작하면 눈이 떠진다. 낮은 화기, 심장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이다. 오후는 금기,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상함을 느끼는 건 폐의 기운이다. 밤에는 수기다. 몸의 활동들이 위축되면서 잠이 찾아온다. 토기는 모든 변화의 마디에 다 들어가 있다. 매니저이기 때문이다. 모든 수행공동체들이 밤 9시~10시에 잠들고 새백 3시~4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규칙을 삼는 건 이런 흐름을 타기 위해서다. 하루가 연출하는 오행의 리듬을 탈 때 신체와 의식이 가장 청정하게 움직일 거라고 본다.
-시간과 공간은 또 다른 모습이다. 즉 시간이 공간이고, 공간이 곧 시간이다. 시간과 공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종첩되어 있다. '지금'과 '여기'는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지금, 여기'들이 무수히 이어져 우주적 시공간이 된다. 생성소멸하는 흐름만 있을 뿐이다. 부질 없는 쳇바퀴를 벗어냐려면 무엇보다 '지금, 여기'라는 현장을 오롯이 주시할 일이다. "겨울에 여름을 그리워하지 안고 밤에 새벽을 기다리지 않는" 툰드라의 유목민들이 그러하듯.
-상생과 상극은 동시적이다. 목화토금수가 상생의 흐름이라면 수화금목토는 상극의 순서다.
-수극화. 물은 불을 제압한다. 화극금, 불은 쇠를 녹인다. 금극목, 쇠는 나무를 극한다. 목극토, 봄날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을 연상하라. 토극수, 물의 흐름을 막는 것이 흙이다. 즉 내가 낳는 것이 나를 극하는 존재를 다시 극한다.
-몸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간심비폐신이 목화토금수라면 이들 사이에도 상생과 상극의 흐름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간은 심장을 낳고, 심장은 비장을, 비장은 폐를 낳는다. 폐는 신장으로 이어진다.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당연히 병에 걸린다. 즉, 간기운이 안좋으면(태과하거나 불급하면) 그 잉여의 몫을 자식에 해당하는 심장에 떠넘기려 할 것이고, 심장이 활발하지 못하면 역시 자식격인 비위에 부담을 전가한다(화기가 많은 사람은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소화를 활발하게 시켜주기 때문이다. 반면 화기가 부족한 사람은 똑같이 먹어도 살이 잘 찐다. 연소하기 보다 저장하려는 속성이 강해서다). 비위가 나쁘면 폐에 영향을 줄 것이고, 폐기운이 신통치 않으면 역시 그 자식인 신장의 물도 정체될 것이다. 사주명리학에서도 나를 낳아주는 상생의 기운이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상생과 상극을 합쳐서 생극이라고 한다. 이 생극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이가 일어난다. 예컨대 간의 대표적 질환이 간기울결이다. 이 병에 걸리면 소화가 잘 안된다. 간기가 비위를 극하기 때문이다. 목극토를 한 것이다. 이때 주로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는데, 간경맥이 옆구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간이 비위를 치면 비위는 또 만만한 신장에다 고통을 전가한다. 토극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장이 위축되면 심장에 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심장의 불은 물이 공급되어야 정미롭게 타오를 수 있다. 병이 상생으로 이어지면 고치기 쉽지만, 상극으로 이어지면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오장육부 가운데 가장 핵심은 심장과 신장이다. 심장은 가슴 한 가운데 폐 바로 밑에 있고, 신장은 등쪽에 두 개가 있다. 심장은 '군주지관'이다. 오장육부를 다 거느리고 주관한다는 뜻이다. 이 심장과 맞짱 뜰 수 있는 장부가 바로 신장이다. 신장은 물을 저장하는 곳, 물의 나라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지혜의 근원이다. 아이디어가 속출하려면 가장 먼저 신장에 물이 넉넉하고 또 잘돌아 가야한다. 이 정이 척추를 타고 올라가서 뇌를 이룬다. "뇌에서 꼬리뼈까지는 위아래로 정수가 오르내리는 길이다." 신장이 곧 뇌의 원천인 셈이다. 신장은 골수, 뼈를 주관한다. 신이 쇠하면 치아 사이가 벌어지고 정이 왕성하면 치아가 든든해지면, 허열이 있으면 치아가 흔들린다. 신장의 기운이 잘 돌려면 물이 풍부해야 하고 그 물을 돌리는 불기운이 있어야 한다.
-수승화강. 신장의 물은 위로 올라가서 연료가 되어 주고, 심장의 불은 그 연료들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이것만 잘 이뤄져도 심신은 기본적으로 태평하다.
-나의 본질을 구현해주는 것은 나를 제어하는 상극의 힘이라는 것.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이 궤도에서 이탈할 때 음허화동이 일어난다. 음허화동에서 수승화강으로! 양생의 대원칙은 이렇게 규정될 수 있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일단 하체를 많이 쓰면 된다. 제기차기, 자전거타기, 달리기, 108배 등등. 제일 좋은 건 '걷기'다. 규칙적으로 등산을 하는 것도 좋고, 아니면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주변 공간을 걷는 것도 좋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근대 임상의학 이전에는 심주설과 뇌주설이 공존했다. 심장이 정신활동의 군주라는 것이 심주설이고, 삼관의 절정인 뇌수해가 더 핵심이라는 도교적 입장이 뇌주설이다. 하지만 병리학의 발달 이후 정신작용의 모든 것은 뇌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게 되었다. 이때의 뇌는 '기의 바다'가 아니라 뉴런들의 다발이다. <동의보감>은 뇌에다 특권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기관은 오장육부이고 정신의 움직임 역시 이 기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간은 분노를 간주한다. 간의 기운이 센 사람은 화를 내면 카르스마가 넘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화를 내면 악을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스타일 와전 구기고 만다. 심장은 기쁨을 주관한다. 비위는 사. 곧 생각이다. 생각도 감정의 하나다. 비위가 활발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고 친화력도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생각이 많아서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된다. 슬픔을 주관하는 건 폐다. 신장의 수기운은 공포를 주관한다. 신장이 튼실하면 인생에 대한 성찰적 능력이 커지게 된다. 그것이 심장의 시능로 이어지면 그게 바로 심신 혹은 정신의 축이다. 유형과 무형 사이의 능동적 교섭! 그것이 바로 곧 존재의 무게중심이다.
-오장육부는 보이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 칠정 역시 그렇다. 잡을 수도 뒤집을 수도 없다. 뜻과 감정 사이의 간극은 은 정도인가? 뜻은 어디서 연원하고 감정의 원천은 어디인가? 이것 자체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 양생의 출발점이다. 관찰하는 훈련. 그것이 곧 성찰이자 통찰의 시작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이 곧 앎이다.
-어제 겪은 감정의 잔여물을 그대로 머무르게 하면 내 몸은 여기저기 뭉쳐서 딱딱하게 경직된다. 머릿속은 뭔가 뒤숭숭하고 께름직하다. 이런 상태가 바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지나간 감정에 붙들려 다음 스텝을 밟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잉여가 쌓이고 쌓이면 소위 '상처'가 된다. 상처는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기억'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건을 해석하는 특수한 '마음의 형식'이다. 현대인은 자의식 덩어리다. 자의식이란 자신에 대한 의식이다. 내면이라고도 한다. 어깨통증과 소화불량, 두통, 어지럼증 등 증상이다.
-날조된 기억, 그것이 상처의 정의다. "과거의 한 선분에 고착된 상태. 그래서 그 과거가 현재에도 작동하고 있는 상태. 정신분석학은 이를 트라우마라고 하고, 불교는 업이라고 말한다.이것을 주관하는 기관이 바로 흉부다. "장부의 경맥은 모두 횡경막을 뜷고 흉부를 지난다. 그리고 그 경맥을 따라 감정이 흉부에 모인다. 감정이 처음 들어올 때도 몸을 거치고 나갈 때도 이곳을 거친다. 모든 기억은 현재의 다양한 감정과 접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흉곽에서 늘 조작되고 있다. (도담 강의안 중)
-니체는 슬픔이나 원한감정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는 걸 약자요 노예라고 했다. 진정 강자라면 슬픔이나 결핍 같은 부정적인 힘이 아니라 능동적인 가치에 의해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칠정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건 과거와 미래를 철저히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가 현재 서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시간을 재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양자학적으로 말하면, 나는 오직, 지금 여기만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여기들이 무수히 모여 나라고 하는 것들이 구성될 뿐이고, 그러니 슬픈 일이 오면 슬픔 자체가 되고, 분노할 일이 오면 분노 자체가 되고, 기쁨이 오면 기쁨 자체가 되어야 한다. 추울 때는 추위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 자체가 돼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지나가게 하라.
-모든 풍으로 몸을 떨고 어지러운 것은 다 간에 속한다. 잘 넘어지거나 다리를 잘 삐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신장에 문제가 있다. 이빨이 약해서 치과를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뼈는 신장의 기운으로 만들어지고, 치아는 뼈의 기운이 이르는 최후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목덜미가 뻣뻣한 것은 여자의 경우 담화, 남자는 정의 부족으로 인해서다. 어깨가 좁은 사람은 폐결핵을 앓기 쉽고, 어깨가 지나치게 넓은 사람은 만성기관지염을 앓기 쉽다. 왼쪽은 간의 영역으로 혈병이 많고, 오른쪽은 폐의 영역으로 기병이 많다.
-이마는 천정으로 심에 속하고, 턱은 지각으로 신에 속한다. 코는 얼굴 중앙에 있어 비에 속하고, 왼쪽 뺨은 간에 속하며, 오른쪽 뺨은 폐에 속한다. 눈은 20대, 코는 40대, 콧망울은 50대, 턱은 60대 이후 등으로 얼굴 자체가 운명의 지도인 셈이다. 가장 중요한 건 표정, 곧 얼굴의 색과 빛깔이다. 이것은 심상의 '표현방식'이다.
-여드름이나 두드러기, 열이 나거나 얼굴이 시린 것등은 모두 양명경의 기가 잘 순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굴이 푸르고 자주 성내는 것은 간의 외증이다. 얼굴이 벌겋고 자주 웃는 것은 심의 외증이고, 얼굴이 누렇고 자주 트림하는 것은 비의 외증이고, 얼굴이 희고 자주 재채기를 하는 것은 폐의 외증이고, 얼굴이 검고 자주 두려워하고 하품을 하는 것은 신의 외증이다.
-눈은 가장 중요한 구멍이다. 오장육부의 정이 모인 곳이고, 영위와 혼백이 머무른 곳이며, 신기가 생겨나는 곳이다. 눈을 총괄하는 건 간맥이다. 간기가 허하면 눈이 어두워진다. 간은 목을 쓰고 신은 수를 쓰는데, 수는 목을 낳을(수생목) 수 있으므로 자모가 서로 합쳐진다. 그러므로 간신의 기가 충분하면 눈이 밝고, 간신의 기가 부족하면 눈이 어둡고 어지럽다. 심은 혈을 주관하고 간은 혈을 저장한다. 혈에 열이 생기면 열은 눈으로 올라와 퍼진다. 눈병은 화로 인해 생긴다. 치료법은 심을 맑게 하고 간을 식히며, 혈을 고르게 하고 기를 순조롭게 하는 것이다. 열이 나게 손바닥을 비빈 후 두 눈을 14번 문지르면 된다.
-귀는 신장의 구멍이다. 신장에서 수기운이 올라와야 귀의 청력이 작동한다. 신이 조화로우면 귀가 오음을 들을 수 있다. 신장은 정이 저장되는 곳이다. 만약 욕심을 절제하지 않거나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나이가 중년을 넘어섰거나 큰 병을 앓은 뒤에는 신수가 마르고 음화가 타오른다. 이것이 음허화동의 전형이다. 이럴 때 나타나는 대표적 증상이 귀가 가렵고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매미가 우는 것 같거나 종이 울리는 것 같다. 즉 이명이다. 이명이 들린다는 건 청력도 문제지만 신장의 기운이 부족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귀는 소리를 듣는 것만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는 힘이기도 하다. 충동이란 외부적 힘에 맹목적으로 끌려 가는 것을 뜻한다. 좌측 귀가 먹은 것이 부인에게 많은 이유는 분노가 많기 때문이다. 우측 귀가 먹은 것이 남자에게 많은 이유는 색욕이 많기 때문이다. 좌우측 귀가 먹은 것은 기름지고 단 음식을 많이 먹은 탓이다. 귀를 튼튼하게 해주려면 자주 손으로 귓바퀴를 손으로 문질러 주면 좋다.
-코는 천기가 드나드는 통로다. 관상학에서도 코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나치게 높으면 인복이 없고, 지나치게 낮으면 줏대가 없다고 한다. 입은 원기, 진기가 새어나가는 통로다. 그래서 숨은 코로 쉬어야 한다. 콧구멍으로는 하늘에 해당하는 기운을 흡입하고 입으로는 땅에 해당하는 액체와 고체의 '음식'을 흡입하는 것이 천지인의 원리에 합당하다. 알레르기 비염 역시 폐기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긴 것이다. 후각은 뇌의 구피질에 해당하는 변연계의 편도체로 직진한다. 그만큼 원초적 본능과 연결된 감각이라는 뜻이다. 코의 양생법은 중지로 콧마루 양쪽을 자주 문질러서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입과 혀. 입은 당연히 비위와 혀는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 심은 혀를 주관하고 비는 입과 입술을 주관하니 심과 비위 기는 항상 서로 통한다. 입과 혀는 말을 만드는 기관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만남이고, 개념과 실재의 마주침이며 마음과 몸의 충돌이다. 그래서 좋은 말을 하면 음양의 순환이 절로 이루어진다. 인성구기는 소리로써 기를 구한다는 뜻이다. 좋은 음식,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 못지않게 좋은 말과 맑은 소리를 내는 것은 수승화강을 이루는 최고의 방편이다.
-이 일곱개의 창을 통해 몸은 외부, 곧 세계와 소통을 한다. 기를 호흡하고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소리를 듣고 풍경을 본다. 기를 호흡하고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소리를 듣고 풍경을 본다. 이 창으로 들어오는 다양한 차원의 정보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구성한다. 꼴이 길한가 흉한가는 사람이건 환경이건 주변에 있는 좋은 기운을 불러 모으는 흡인력에 달려있다. 동안이란 얼굴에 담아야할 시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숙을 거부하는 것. 미성숙하다는 건 철학적으로 볼때 세계안에서 나의 역할과 책임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된다.
7장 - 병과 약: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하늘에는 오운이, 땅에는 육기가 형성되었다.
-존재와 병은 분리될 수 없다. 삶이 있는 곳엔 늘 병이 따라 다닌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현현하는 방식과 경로는 각양각색이다. 그 복잡한 경로들을 간결하게 정리하면 (1)외감, (2)내상과 허로, (3)기타 등등이다. 외감이란 외부의 기운에 감한다. 즉 '감기'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그 감기는 물론 외부의 기운과 부딪혀서 발생하는 모든 증상이 다 포함된다. 감기는 결코 완치가 불가능하다. 그저 낮은 포복으로 지나가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운기의 핵심은 절기다. 오행은 다섯인데 육기는 왜 여섯인가? 풍한서습조화 가운데 '화'가 군화와 상화 둘로 나뉜 탓이다. "목의 작용을 풍이라 하는데, 봄을 주관한다. 군화의 작용을 열(화)라 하는데 늦봄에서 초여름까지 주관한다. 상화의 작용을 서라 하는데, 여름을 주관한다. 금의 작용을 조라 하는데 가을을 주관한다. 수의 작용을 한이라 하는데 겨울을 주관한다. 토의 작용을 습이라 하는데 장하(늦여름)을 주관한다. 장하는 6월을 가르킨다.
-관절염 환자들은 미국 서부 사막지대에 가면 바로 무릎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좋은 병원이란 명의가 있는 곳이 아니라, 첨단의 장비를 갖춘 곳을 지칭한다. 이 장비의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려면 검진과 수술을 일상화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눈빛에 신이 들어 있는가 아닌가다. 신이라는건 간단히 말하면 '생명에의 의지'다. 결국 병을 고치는건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자신이다. 환자가 신을 놓아버리면 어떤 명의도 고칠 도리가 없다. 얼굴에는 모든 정보가 다 담겨있다. 이마는 심의 부위이고, 코는 비, 왼뺨은 간, 오른뺨은 폐, 턱은 신의 부위다. 각 부위의 색을 살펴 황생, 적색이면 열증이고 백색이면 한증이고 청색, 흑색이면 통증이 있는 것이다. 코끝이 거무스름한 것은 수기가 있는 것이고, 귀가 마르고 때가 낀 것은 병이 뼈에 있는 것이다.(잡병편 심병 중)
-배움이란 주어진 자료를 가지고 스스로 하나의 텍스트를 구성하는 능력이다. 보고 있어도 보는게 아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물음을 본격적으로 탐사해야 할 때다.
-토의 기운이 태과하면 비가 오고 습기가 많아서 신장의 수기가 사기를 받게 되어 주로 하체가 부실해지는 병을 앓게 된다. 수의 기운이 태과한 해는 찬 기운이 심해져 심장의 화기운의 사기를 받게 되어 열병이 일어난다. 화기가 태과한 해는 폐의 금기운이 사기를 받게 되어 주로 호흡기 계통의 병이 온다. 반대로 금 기운이 태과한 해는 간이 사기를 받게 되어 가슴과 옆구리가 당기는 병을 앓기 쉽다. 목 기운이 태과하면 비장이 사기를 받게 되어 소화기가 영 신통치 않다.(신동원,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중) 모든 오행은 상극의 방향으로 병증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기가 극하는 오행이 제일 만만하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전가를 해버리는 것이다.
-중풍의 풍은 증상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고 원인은 풍이 아니라 화다. 치법은 순환이다. 기를 고르게 하고 땀을 내라. 음식을 많이 먹지 말라 등등. 전이란 몸이 떨리는 것이다. 율이란 마음이 떨리는 것이다. 정기와 사기가 싸우면 몸이 떨리고 정기가 허하여 싸우지 못하면 마음으로 두려워하여 떠는 것이다. 몸이 떨리면 병이 나으려는 것이고, 마음이 떨리면 병이 심해지는 것이다.
-사지권태, 관절염, 소화불량, 부종 등 전반적으로 몸을 무겁게 하는 증상들은 거개가 다 습으로 인한 병이다. '습' 자체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한 셈이다. 습관, 습속 등도 이 습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어떤 혁명과 개혁도 사람들의 습속을 바꾸는데는 한계가 있다. 조는 습을 말리는 기운, 곡 기화작용에 해당한다. 기화작용을 거쳐야 음기가 양기로 전화되어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다.
-음식의 핵심은 곡식이다. 정과 기의 글자에 모두 쌀 미 자가 들어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육식에만 치중하면 양기는 강해지고 음기는 약해진다. 자나치게 많이 먹거나 아니면 덜 먹거나. 배 부르면 폐를 상하게 하고, 배 고프면 기를 상한다. 특히 과식의 폐해는 심각하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여러 가지로 기가 소모된다. 먹은 것이 내려가지 않고 위로 올라와 구토하면 심의 근원이 소모된다.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과식과 육식은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는 점이다.
-마음과 몸이 피로하여 기혈이 모두 상했을 때는 쌍화탕을 쓴다. 피부가 허하면 열이 나고, 맥이 허하면 놀랜다. 육이 허하면 몸이 무겁고, 근이 허하면 당긴다. 골이 허하면 아프고, 수가 허하면 늘어지며, 장이 허하면 설사한다.
-부종이란 물이 모여서 병이 생기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에서 자신을 번뇌에 빠뜨리는 오행이 곧 운을 바꾸는 구원처라고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8장 -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남녀에 대한 인식의 핵심은 마지막 부분에 있다. 남자는 양기라 운행시키고 여자는 음기라 머물게 한다. 해서, 남자는 너무 써서 병이 생기고 여자는 너무 쌓여서 병이 된다. 모든 병에 남자는 반드시 성생활을 살피고, 여자는 먼저 월경과 임신을 물어야 한다. 이것이 <동의보감>이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몸적 차별상이다. 이 자체는 어떤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여성에게 병이 있으면 일단 그게 뭐든 간에 생리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생리 안에 감정과 일, 생활리듬 등 모든 것이 담겨있다.
-14세에 천계가 열리면서 초경이 시작되고, 49세에 천계가 닫히면서 폐경이 된다. 이게 여성의 몸에 흐르는 자연의 리듬이다. 초경이 늦어지면 이 리듬에 문제가 있고 그래서 건강과 출산, 수명 등에 장애가 생긴다. 여성들은 특히 칠정상이 많기 때문에 폐경이라는건 사건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병증이 천차만별이다.
-여름이 가글로 바뀌는 걸 우주의 '금화교역'이라고 한다.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는 홍조와 우울, 불안, 건망증 등의 신경 증상과 심혈관 질환은 화기가 성한 것이다. 반면, 피부의 탄력 손실과 골다공증, 질 건조, 외음부 가려움, 요실금 같은 비뇨생식기 질환은 금기가 쇠한 것이다. 이에 지나친 화를 누르고, 부족한 금을 북돋우면 호르몬에 의존하지 않고 갱년기 증상을 이겨낼 수 있다. 생리가 멈추면 지혜가 쌓이고 이 지혜로 공통체를 이끌어 가는 것, 그것이 폐경기 이후 여성들의 가장 자연스러운 코스라고 본 것이다. 여성의 지혜가 공동체 전체의 행복과 안녕으로 확장될 때, 그 때 비로서 여성성은 대지의 모성으로 발현된다.
-부인의 병이 남자의 병보다 열 배로 치료하기 어려운 것은 남자보다 욕심이 많아 병이 배로 잘 걸리고 질투, 성냄, 연민, 애증이 깊어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병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여성의 병은 감정의 기본이 심한 탓이라는 것. 현대는 스트레스의 시대다.
-칠정을 내 안에 가두어 두지 말고, 그것이 세상 속으로 흘러가도록 하라. 그것만이 출구다. 타자와의 접속을 통해 '미친 존재감'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 이 공감의 기술이야말로 여성들이 칠정의 억압 혹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자 최고의 양생술이다.
-교육의 핵심은 생로병사의 마디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힘이다.
-칭찬을 받을 만한 행위가 아닌데 칭찬을 받게 되면 기분은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자부심이 생기지는 않는다. 단지 그 기분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만 늘어날 뿐이다. 자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어떤 행위의 결과로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칭찬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식으로 결국 잠재력을 끌어내기는커녕 잠재력을 영원히 잠재워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만다. 중요한 건 칭찬이 아니라 믿음이다.
-리더십은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삶을 연출해내는, 그래서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의 핵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있다.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부러움이나 선망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고 따를 수 있겠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즉, 친화력과 깊은 신뢰, 그 둘이 결합해야 비로소 형성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럼 친화력과 신뢰를 동시에 갖춘 리더십을 터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경청의 힘'이 바로 그것이다. 경청이란 남이 하는 말을 진심으로 귀기울여 듣는 것을 뜻한다. 요즘 사람들은 제각기 고립되어 있어서 남한테 자기 말을 하지도 않지만 남의 말을 열심히 듣지도 않는다. 소통을 하려면 일단 경청 훈련을 해야 한다. 마음을 얻는 것도 이로부터 시작한다. 경청이란 상대방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간파하는 힘이다. 일단 핵심을 정확히 알아야 새로운 출구나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법이다. 리더십이 경청에서 시작된다는 건 바로 이런 맥락이다.
-이런 능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귀를 잘 보호해야 한다. 부처님의 귀가 큰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요즘 아이들은 귀가 튼튼하지 못하다. 신체가 이렇게 바뀌게 되면 귀는 물론이고 신장의 기운이 현저하게 저하된다. 귀는 신장의 기운과 연동되어 있다. 그러니까 잘 들을 수 있으려면 신장이 튼튼해야 하고, 신장이 튼튼하면 잘들을 수 있다. 신장은 오장육부에서 특히 생명의 정기(정력과 수명)를 주관하는 장기다.
신장은 목소리의 뿌리이기도 한다. 목소리가 가벼운 것은 기병이거나 약한 것이다. 목소리가 가라앉고 탁한 것은 통증이 있거나 중풍이다. 고함치는 것은 열로 미치려는 것이다. 목소리가 급한 것은 신이 놀란 것이다. 목소리가 막히는 것은 담이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한증이다. 목이 메는 것은 기가 순조롭지 못한 것이다. 천증은 숨이 급한 것이다. 재체기는 상풍이다. 놀라서 우는데 목소리가 잠겨 나오지 않는 것은 병이 중한 것이다. 목소리가 탁하고 잠겨서 조용하게 나는 것은 감정이다. 귀와 신장, 그리고 목소리가 하나의 생리적 회로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타인에게 신뢰를 받기 어렵다. 아무리 성형의 시대라 해도 사람에 대한 느낌과 인상을 결정짓는 건 어디까지나 목소리다. 즉, 경청의 힘과 목소리의 내공은 같이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귀와 신장, 그리고 목소리 - 이 세가지가 역동적인 리듬을 탈 수 있어야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하고, 또 그래야 리더십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는 것.
-아이들에게 경청의 힘 혹은 리더십을 키워주고 싶다면 일단 아이들이 디지털 기술에 중독되어 눈과 귀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능한 몸을 움직여 뛰어놀게 해야 한다. 하체를 많이 움직여야 신장이 튼튼해질 테니까. 신장은 오행상 수고, 이 수는 뼈를 만든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뼈를 알 수 있고, 뼈는 곧 마음이라는 것이다. 뼈가 튼튼해야 끈기가 있고, 끈기가 있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반드시 해내게 마련이다. 결국 사람팔자는 끈기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크고 낭랑하게 키우면 뼈도 튼튼해진다. 그래서 낭송이 아주 좋은 수행법이 된다. 남의 말을 잘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 리더십의 기초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핟.
-우리 시대 여성들을 지배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인정욕망'이다. 그 욕망의 대상은 처음엔 부모, 다음엔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 대상들이 모조리 가족안에 갇혀 있다는 건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왜 모든 여성들이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굴에서 갇혀있는 것일까.
-왜 글쓰기를 해야 하는가? 글쓰기란 몸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의 일환이다. 전투의 제일보는 배움의 자세다. 배움이야말로 최고의 생존전략이다. 동서양 모두 의사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뭔가를 배워햐 한다는 것. 뇌는 뉴런들의 다발이다.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가 끊어지면 뇌는 긴 침묵이나 혼란에 빠져 버린다. 그것이 곧 치매다. 이 시냅스가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는 행위가 바로 배움이다. 배움은 곧 타자와의 능동적 접속이자 삶의 현장에 적극 개입하는 실천적 행위다. 그 행위들이 교양과 정보의 지리한 나열에 그치지 않으려면 글쓰기를 통해 지성의 수위를 높여 가야 한다. 글쓰기란 치유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주도해갈 수 있는 능동적 단련을 의미한다. 자기수련으로서의 글쓰기, 자기구원으로서의 앎!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병의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음식과 운동, 칠정과 관계, 이것이 거의 전부라 해도 무방하다. 일단 몸이 아프면 누구나 이 과정에 대한 점검을 시작해야 한다. 식습관을 바꾸고, 적절한 운동을 시작하고, 감정의 회로를 관찰하고 노동의 질과 양을 조절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어떤 치유책도 별 의미가 없다.
-생각을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
-큐라스는 케어의 라틴어다. 호모 큐라스란 케어의 달인이라는 뜻. 케어는 치유, 돌봄 등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수련이 더 적절하다. '생로병사'라는 전 과정을 자신의 힘으로 넘어서겠다는 발심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실천을 통해 그것을 닦아 가는 과정이 곧 수련이다.
-박노해 시인은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호모 큐라스'가 된다는 건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된다는 의미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자기 병을 알아 스스로 치유해 가라고, 또 양생술을 통해 요절할 자는 장수하고 장수할 자는 신선이 되라고.
-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꿈이 아니라 망상일 뿐이다. 그럼 어떤 행이 필요한가? 108배나 등산, 걷기, 낭송 등등 방법은 수없이 많다. 뭘 택하건 매일 일상에서 규칙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가능하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공간에서. 처음에는 힘들지만 몸이 그 리듬에 익숙해지면 그 시공간의 기운을 몸에 저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 반드시 앎의 의지와 욕망이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어떤 실천이나 수행도 매너리즘에 빠지고 만다. 글쓰기가 가장 좋은 수련법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글쓰기는 지성의 정점이다. 삶과 세계를 언어로 구조화할 수 없다면 아직 지성의 주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지성인이 된 이 시대에 가장 결락된 기술이기도 하다. 대학이 몰락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고, 이런 차원에서 보더라도 최고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몸과 삶을 언어로 조직할 수 있으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집중력이 곧 정기신의 확보다.
-독서의 밀도가 높아져야 한다. 글쓰기를 지성의 중심에 놓으면 독서의 양 자체가 달라진다. 낭송과 암송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해진다. 글이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성철과 수렴 능력을 키우는 데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언어를 창조하고 조직하는 능력이 없이 지성의 근육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글쓰기란 통찰력을 터득하는 최고의 방편이다.
-치유본능에 충실한 의사들의 전언은 한결같다.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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