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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디자인 아티스트의 살롱
여백이 있는 풍경/Artist Way

Week 10_자기보호에 힘쓴다

by CreActive Coach 2021. 1. 2.
이번 주에는 창조의 여정에 잠복해 있는 위험을 탐색해본다. 창조성은 정신적인 문제이므로 이런 위험도 대부분 정신적인 위험이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글과 과제, 연습을 통해 창조성의 흐름을 가로막는 해로운 행동유형이 무엇인지 밝혀본다.

 

<창조성 차단제: 음식, 술, 약물, 섹스, 일>

창조성은 프리즘을 통해 흐르는 빛처럼 우리를 통해 형상화되어 흐르는 에너지이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을 때 이 에너지는 더욱 자유롭게 흐르고 우리는 아무런 긴장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에너지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 우리를 데려가려는 곳을 거부할 때면 불안하고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에너지의 흐름을 차단하고 제어감각을 되찾고 싶어진다. 이를테면 심리적인 브레이크를 꽉 밟아버리고 싶은 것이다. (p276)

음식이나 일, 섹스 그 자체는 모두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것들은 창조성과 관련해서 남용되거나 오용됐을 때만 문제가 된다. 바꿔말하면 자신을 아티스트로 이끄고 있는 사람은 창조성을 가로막고 싶을 때 이런 것들을 남용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p277)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차단제에 중독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 그 차단제를 일종의 권리인 양 옹호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 증거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거해 보자. 포기할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이 최대의 탈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p277) 

모든 차단제의 한결같은 목적은 두려움을 줄이는 것이다. 내적 공허함으로 불안을 느낄 때마다 창조성을 막기 위해 약물에 의존한다. 가끔은 다른 것으로 위장하기도 하지만, 차단제에 의존하도록 우리를 내모는 원흉은 바로 두려움이다. (p277)

우리는 대게 차단제를 우연히 선택한다. (중략) 차단제를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창조성의 유턴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저버린다. 고여있는 물처럼 우리는 썩어버린다. (p277)

차단장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끊는 데는 배려와 용기가 필요하다. (p278)

창조성 차단은 본질적으로 신념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의 직관과 재능, 재주, 욕구를 믿기보다는 창조주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춤을 추고, 오디션을 받으며 창조주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지켜보기 보다는 차단장치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p278)

창조성이 막히지 않은 사람은 훨씬 많은 위협에 노출되겠지만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p278)

불안은 일정의 연료이다. 불안을 이용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작업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78)

 

<일중독에서 벗어나기>

"우리가 자신에게 진실로 정직하다면, 우리의 삶이 정말로 온전히 우리에게 속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된다." -세시르 차베스 (p281)

소중한 목표를 향해 재미있게 일을 해나가는 것과 일종독은 다르다. 그 차이는 일을 하는 데 들인 시간의 양보다는 정서적인 질에서 찾을 수 있다. 일중독의 경우에는 일이 질적으로 단조롭고 피곤한 것이다. 일중독자에게는 일 자체가 가치여서 일거리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창조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가로막지 않으려면 자신의 업무 습관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p284)

자신을 합리화하는 핑계를 없애려면 최저선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 각자 최저선이 다르겠지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언급해두어야 한다. 이렇게 특정한 행동을 설정해두면, 모호하고 일반적인 결심을 했을 때보다 더 즉각적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p285)

시간 사용일지를 보면 어디에 경계선을 그어야 할 지 효과적으로 알 수 있다. 여기서 경계선이란 최저선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나는 최소한 ________________은 하지 않겠다." 이것은 당신의 경계선이다. (p285)

회복과정을 점검하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업무공간에 표어를 붙이는 것이다. (p286)

 

<창조성의 가뭄 극복하기>

우리는 모닝페이지 위에서 가뭄을 견뎌낸다. 이것은 작가들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모닝페이지는 형태상으로는 문학의 모습이지만, 글 쓰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모닝페이지는 우리와 같은 창조적인 존재들을 탐험으로, 고향으로 이끄는 일종의 구명 밧줄과도 같은 것이다. (p287) 

모닝 페이지를 쉬지 않고 써왔기 때문에 가뭄이 끝난 것이다. 우리가 절망으로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뭄이 끝난 것이다. 가뭄이 과연 끝날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가뭄에서 헤어나려고 애를 써왔기 때문에 마침내 끝난 것이다. 창조적인 삶에서 가뭄은 필수적이다. 사막에서의 가뭄은 우리에게 청명함과 관용을 가르쳐준다. 가뭄의 시기가 오면 그 안에 어떤 목적이 있다는 걸 깨닫고 계속해서 모닝 페이지를 써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일다. 머지않아-우리의 기대보다는 언제나 늦겠지만-우리가 쓴 모닝 페이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줄 것이고 곧이어 길이 나타날 것이다. 이때 통찰력은 황야를 벗어나는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가 된다. (p288)

 

<명성이라는 마약>

명성은 성공과는 다르다.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하루를 충실하게 보낸 다음에도 성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명성은 중독성이 있어서 우리를 항상 굶주리게 만든다. 명성은 정신적인 마약이다. 명성은 창조적인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핵폐기물처럼 위험한 부산물이기도 하다. 명성을 쟁취하고 유지하려는 욕망은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가 아니라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하게 된다. 일의핵심은 어디까지나 일 자체이다. 그러나 명성을 얻고 싶은 욕망은 이런 인식을 방해한다. (p289)

우리 모두는 명예가 따르는 곳에서는 명예를 추구한다. 그러나 아티스트로서 언제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성에 초점을 맞추면 지속적인 결핍을 느끼게 된다. (p289)

자신을 소중하게 다룰수록 더욱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신, 즉 자신의 창조적인 자아에게서 받는 팬레터는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명성이란 자신을 인정하는 지름길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만족하려고 노력하자.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티스트로서든 보통 사람으로서든 명성없이는 사랑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구체적이고 애정이 깃든 행동은 이러한 두려움을 해결해준다. 우리는 활발히 그리고 의식적으로, 지속적으로, 창조적으로 내면의 예술적 자아를 키워야 한다. (p290)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본질을 표현한다.

 

<경쟁심과 자기파괴>

경쟁은 또 하나의 정신적인 마약이다. 경쟁에 골몰하는 것은 우리가 먹는 우물물에 독약을 풀어 넣는 일이고, 자신의 발전을 가로 막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곁눈질하는 것은 자신의 직행노선에서 눈길을 떼는 것이다. 자신에게 잘못된 질문을 던진다면 잘못된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다. (p291)

우리는 그런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변명을 늘어놓는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변명 들이다. (p292)

창조성을 가로막는 걸림돌 밑에는 대개 경쟁심이 깔려 있다. 그러나 아티스트로서 우리는 그 걸림돌을 넘어가야 한다. 또한 전진하라는 내면의 안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저것 걱정할 이유가 없다. 작품을 만들기에 너무 이르거나 늦었다 해도 기회는 언젠가 다시 한 번 찾아올 것이다. (p292)

경쟁심이란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최고로 잘해야 한다는 자아의 요구이다. 우리의 작업이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 이어야 한다는 것-이는 불가능한 일다-도 자아의 요구이다. 모든 작품은 다른 작품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또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사람, 홀로 떠 있는 대륙 같은 작품은 없다. 예술에 반응한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예술의 울림에 응답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소한 어떤 것을 찾아본다고 해도 실제로 새로운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이미 있던 것을 새로운 조명 아래서 보는 것이다. (p293)

독창성이란 결국 자신을 변함없이 진실하게 대하는 과정이다. (p293)

성공작은 나중에 돌이켜보았을 때만 확실한 것이다.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때가지는 수많은 창조적인 백조들을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고개를 드는 어린 창조성에게 가하는 모욕이다. (중략) 그것은 지금은 어설프로 엉성해 보이지만 훗날 정말 멋진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싹을 꺽는 것이다. 모든 새끼들이 태어날 때부터 예쁜 것은 아니다. 작품활동에도 성숙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이른 판단은 부정확한 판단이 되기 십상이다. 이제 막 시작한 일을 성급하게 판단해선 잘대도 안된다. (p294)

예술이란 그것을 키워갈 시간이 필요하다.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 어색하고 볼품없는 모습을 거쳐 마침내 독립된 개체로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자아는 즉각적인 만족을, 남들에게 인정받는 달콤한 성공을 원한다. 이겨야 한다는, 그것도 지금 당장 이겨야 한다는 욕망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보란 듯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p295)

 

Week 1_안정감_#시작

Week 2_정체성_#관심

Week 3_힘(에너지)_#기회

Week 4_개성_#현존

Week 5_가능성_#자연스러움

Week 6_풍요로움_#소확행

Week 7_연대감_#크리액티브

Week 8_의지_#문 

Week 9_동정심_#소림사 #회복탄력성

Week 10_자기보호_#모닝페이지

이번 주는 3주만에 <아티스트 웨이>를 읽었다. 챕터 수가 줄어듦을 아쉬워 하고 있다. 모닝페이지를 계속 쓰고 있었는데, 모닝페이지가 나와 마주하는 온전한 시간이라는 것을 이번 주에 특히 느낄 수 있었다. 모닝페이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지금 나의 기분과 생각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온전하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알게 된다. 아직은 글이 아니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데, 모닝페이지의 글들이 온전한 글들이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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