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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최인철-의미형 인간이 저력있다

by CreActive Coach 2019. 3. 18.

의미형 인간이 저력 있다.

-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재미형 인간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들의 신조는 소확행(小確幸)이며, 그들의 주적(主敵)은 지루함이다. 그들의 행동 강령 1호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묘비명이다. 삶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그들에게 이르러 향유와 축제로 변형되었다.

늘어난 수명 덕분에 죽음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세대이기에 그들은 더 이상 삶에 대한 엄숙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 그들은 재미의 실종을 우리 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라고 여긴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외부의 평가를 통렬하게 받아들인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우리는 좀 더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 도덕과 원칙을 내세워 유머를 추방해서는 안된다. 실없음과 유치함을 사랑해야 한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의 눈동자에서 장난기가 사라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의미형 인간이 기죽을 필요는 전혀 없다. 특별하게 즐겁지는 않아도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내세울 만한 소확행은 없지만 일상을 그럭저럭 잘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 불공정성과 부조리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난받고 있는 사람들. 이런 의미형 인간에게도 재미형 인간 못지 않은 저력이 있다.

의미형 인간은 일상의 스트레스에 강하다. 그들에게는 궁극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기에 그 밖에 다른 일들은 이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이유를 애초부터 느끼지 못한다. 중요한 목표에 집중하느라 뒷담화에도 흥미를 못느낀다. 의미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의미가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힘은 해석을 통해서도 발휘된다. 의미는 고난에도 뜻이 있다는 해석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의미다. 의미형 인간은 실패를 자기 삶에 대한 위협이 아닌 도전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의미형 인간은 고난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저력을 최고조로 발휘한다. 나치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도록 한 힘도 바로 삶에 대한 의미였다. (독립운동가, 유관순이 생각남) 연구에 따르면, 위험천만한 구조 현장에서 소방관들을 뛰어들게 만드는 가장 큰 힘도 삶의 의미와 목적이다. 의미는 즐거움을 찾기 어려운 고난의 상황에서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의미형 인간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도 정서적으로만 이겨내려고 하기 보다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적그적인 노력을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미래에 다칠 어려움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을 잘한다. ‘유비무환은 재미형 인간에게는 귀찮은 일이지만, 의미형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의미형 인간의 저력은 자기 몸을 소중하게 돌보는 행위를 통해서도 발휘된다. 의미형 인간은 절제의 삶을 산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긴다. 그들은 재미형 인간에 비해 더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담배를 덜 피우고, 술을 덜 마신다. 그들에게는 늘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건강검진도 자주 한다.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기 몸을 돌볼 필요와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반복적인 운동이 늘 재미있을리는 없다. 그들은 그저 건강한 몸이 제공하는 활력을 통해 중요한 목적을 이루려고 할 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담배를 전혀 피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 흡연자들보다 의미 점수(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가 높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 미국 UCLA와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함께 실시한 연구에서도 스트레스 유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에 맞서 싸우는 신체의 항체 반응이 의미형 인간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 비록 재미형 인간의 눈에는 그들의 일상이 지루하고 단조롭게 비칠지라도, 그들은 자기 절제의 삶을 통해 몸과 마음의 저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재미형 인간의 저력은 크다. 재미는 창의의 원천이며, 삶의 활력소다. 우리 안의 재미 본성을 억압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의미형 인간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의미형 인간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신다. 의미형 인간은 일상의 스트레스에 강하며, 고난을 바라보는 해석 체계가 튼튼하고, 무엇보다 자기 몸과 마음을 잘 돌본다. 의미와 목적은 진부한 슬로건이 아니다. 재미를 반감시키는 눈치없는 존재도 아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 소확행이 대세인 지금,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의미형 인간들은 이제 어깨를 펴야 한다. 의미가 대세인 시대가 오고 있다.

(2019.03.13.수 중앙일보 마음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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