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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디자인 아티스트의 살롱
여백이 있는 풍경/지혜로운 삶

#2022-13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사이에 서다

by CreActive Coach 2022. 3. 25.

 

 

김지수 저자가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라고 했던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한다.

책을 읽고 잔상이 계속 남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삶과 죽음, 삶을 통해서 죽음을 보고,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말씀을 하시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나도 살면서 늘 죽음을 함께 생각한다. 나쁜 의미의 죽음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죽음이 오히려 피하고 싶은 것이라기보다 그 죽음이 온다면 온전하게 기꺼이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다. 

 

몸과 마음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for healthy life'라는 말을 해시태그에 붙여서 사용하곤 한다. 몸과 마음은 늘 생각하지만 일상에서 영혼에 대해 크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았다. 죽음과 영혼에 대해 연결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는 육체(body)와 마음(mind), 영혼(spirit)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 말씀하셨다. 서양에서는 육체와 영혼이라는 이원론으로 보지만 이어령 선생님은 육체, 마음, 영혼의 삼원론으로 인간을 바라본다고. 나도 그 의견에 정말 동의한다. 육체와 마음에 집중해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 영혼은 함께 온다. 그래서 현실에서 육체와 마음에 집중하고 살고 있으면서 영혼을 바라보며 그 경계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리컵을 빗대어 설명해주신 삼원론의 핵심은 '비움'이라고 나는 느꼈다. 비워져야 육체와 마음이 영혼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까. 컵 안에는 우리의 욕망에 따라 다양한 것들이 들어간다. 그래서 "똑같은 육체인데 한 번도 같지 않다. 우리의 마음이 늘 그렇잖아.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고 한다.

 

나의 마인드를 지탱해주는 것은 몸이다. 몸은 마인드에 따라 시시각각 같이 변한다. 어떤 마인드를 담아내는가가 나의 몸을 만들어낸다. 마인드를 비우면 영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마인드가 들어감에 따라 빈 공간이 사라졌다. 그래서 영혼이 맑아지려면 그 마인드를 비워내는 연습을 꾸준하게 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이어령 선생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나에게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비어있는 공간 void에 마인드를 채울 것인가 스피릿을 채울 것인가. 비움과 채움의 미학 

 

내 머리로 생각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어떤 자리든 어떤 주제든 겁날 것이 없었다.

 

어디서건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어령 선생님은 '자기 머리로 이야기하면 겁날 게 없다.'고 하셨다. 자신감일 수도 있고, 자존감일 수도 있고, 진정성, 아우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내 머리로 생각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공부하고 생각하고 만들어낸 것이라 누구보다도 내가 전문가다. 그래서 당당함, 자신감일 수 있겠다. 수많은 책을 보고 배우고 해도 그것을 내 것으로 체화하지 않으면 내 이야기로 풀어낼 수 없다. 그것을 접하고 내 머리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하나하나 내 머리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머리는 내 것이지만 생각은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이 문제다. 내 머리로 생각하면 전혀 다른 앵글이 나온다.

 

책을 읽는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덮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마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풀 뜯어먹는 소처럼 독서하라는 메시지. 좋은 책은 여러 번 읽고 와닿지 않거나 쓸모없는 책들은 쓰윽 훑어 읽기도 마음을 편하게 하고 내 생각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남들과 같지 않은, 독창적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갖고 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느꼈다. 독창적으로 쓰는 것. interview의 inter는 사이라는 뜻. 그대로 그 사람의 말을 전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해석하고 쓰는 사이의 미학을 보여준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인간은 3가지 부류가 있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사는 부류. 개미는 땅만 보고 가면서 눈앞의 먹이를 주워먹는 현실적인 사람들이야. 거미 부류는 허공에 거미줄을 치고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기를 기다리지. 뜬구름 잡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학자들이 대표적이야. 마지막 꿀벌이네. 개미는 있는 것 먹고, 거미는 얻어걸린 것을 먹지만, 꿀벌은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들어. 개미와 거미는 있는 것 gathering 하지만 벌은 화분을 transfer 하는 거야. 그게 창조야.

 

둥글둥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세계에선 관습에 의한 움직임은 있지만, 적어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자가발전의 동력은 얻을 수 없어.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생각이 날개를 달아주거든. 그래비티, 중력에 반대되는 힘. 경력이 생기지. 가벼워지는 힘이야. 그런 세계에서는 사실 '사회성'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언제부터인가 나는 끊임없이 나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타인에게 의지하다보면 내가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그 방향성에 답을 얻은 느낌이어서 참 반가웠다. 내가 그렇게 타인의 일로 살아가려기 보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결국은 타인에게 의지하기보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그런데 그것은 생각하는 힘에서 온다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에 내 생각을 얹어내는 힘. 

 

 

'타자를 나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그가 있는 그대로 있게 하라.'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고,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라네. 타자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왜곡해선 안 돼. 일례로 우리는 내가 아플 때 남이 그걸 아는 줄 알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런데 그 아픔은 자기 아픔을 거기다 투영한 것뿐이네. '지금 저 사람이 피를 흘려서 얼마나 아플까?' 그건 자기가 아픈 거야. 자기 마음이 아픈 거지.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중략) 존재와 존재 사이에 쳐진 엷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 일수 있는 것'처럼.

 

무리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한 놈이라는 거지. 그렇게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끌어안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거야.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남을 끌어안겠나? 내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있어? 그런데 '나 없는 우리?' 아니 될 말씀이야. 큰일 날 소리지. 그래서 내가 사이를 강조했잖아.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다는 거지. 자네와 나 사이에 interview가 있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내가 얻은 인사이트는 스토리텔링의 세계이다. 모든 것을 관심, 관찰, 관계의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하셨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유지, 반환지가 있을지 몰라도 목표는 없다. 평생을 모험하고 방황하는 거지. 길 위에서 계속 새 인생이 일어나는 거야. 원래 길의 본질이 그래. 끝이 없고 계속 이어질 뿐."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스토리에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중요성을 몰랐다. 다들 중요하다고 하는데 안 와닿았다. 그런데 이번엔 그 말이 가슴에 확 꽂혔다. 왜 일까? 아마도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주제와 마주했기 때문일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이것을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가 없이 막연했다. 너무 큰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은 일상에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게 스토리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오코치님께 선물 받은 책을 일주일간 읽으면서 많은 성찰을 해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뛴다. 아마도 이 책을 나는 다시 여러 번 꺼내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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